이 영화는 1902년 1월 '아오모리현'의 산악 지역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제국 육군의 중대 규모의 행군 부대가 혹한으로 조난당해 부대원 210명 중 199명이 동사한 사건을 영화화한 것으로 1971년 '닛타 지로( 新田 次郞)'에 의해 이 사건을 다룬 소설 '핫코다산 죽음의 방황(八甲田山死の彷徨)'을 원작으로
1977년 '일본침몰'로 유명한 '모리타니 시로'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키타오오지 킨야', '타카쿠라 켄', '미쿠니 렌타로', '탄바 테츠로' 등 당대 유명 배우들이 촐출동한 호화 캐스팅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극한 상태에서 조직과 인간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단기간에 배급 신기록을 기록했으며, 극 중 '기타오지 긴야'의 '하늘은 우리를 버렸다'라는 대사는 당시 큰 유행어가 되었으며
1977년 키네마 준보 베스트 4위에 선정됐고 개봉 다음해인 1978년에는 일본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하며 그 당시까지의 역대 흥행 순위를 갈아치웠으며, '야쿠타가와 야스시(芥川也寸志)'가 음악을 맡아 제1회 일본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는 실제 사건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바뀌고 조난 상황의 상당 부분이 각색 되서 실제 사건과는 조금 다르며 210명 중 실제 생존자 11명도 2년 뒤 1904년 러일전쟁 때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핫코다산 사고 현장에는 사고 사실을 처음 알린 '고토 오장'의 동상이 세워졌고 참사 소식을 들은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가 '메이지 천황'에게 위문품으로 스키 2대를 보내줬는데 이게 일본 스키 역사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 제목 : 핫코다산 (八甲田山)
- 개봉 일 : 1977.06.18일
- 감독 : 모리타니 시로 (森谷司郎)
- 출연
- 도쿠시마 대위 역 (徳島大尉) : 타카쿠라 켄 (高倉健)
- 간다 대위 역 (神田大尉): 키타오오지 킨야 (北大路欣也)
- 야마다 소령 역 (山田少佐): 미쿠니 렌타로 (三國連太郎)
- 오가타 켄
1902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의 영하 40도의 설원에서 원활한 작전을 할 수 있도록 동계 시범 훈련을 계획하고 1월에 8사단 5연대와 31연대를 아오미리현 핫코다산으로 설중 행군을 계획합니다.
아오모리 5연대는 2대대 중심으로 1대대,3대대에서 차출한 인원을 포함 해 1개 중대 규모의 210명을 구성 해 '야마다' 소령, '간다' 대위의 지휘아래 아오모리에서 출발해 핫코다산으로 혹한기 행군을 실시합니다.
5연대는 부실한 준비와 31연대에 뒤쳐지면 안된다는 지휘관의 고집이 맞물려 4km 지점에서 2일만에 길을 잃고 우왕좌왕 하면서 한두명씩 동사를 하게되면서 어느순간 생존 인원은 50여명 밖에 남지않습니다.
반면 히로사키 31연대 '도쿠시마' 대위는 소수 정예의 27명의 부대를 이끌고 지역 주민을 안내인의 도움을 받아 야간 숙영은 민가에서 하는 등 유능한 지휘관의 모습을 보여주며 1월27일 마침내 핫코다산에 도착하고 '간다' 대위를 비롯한 대원들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5연대의 생존자는 고작 11명, 199명은 추위에 전부 동사했고 살아남은 3명은 사지가 멀쩡 했으나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 절단해야 했으며 나머지 8명은 동상으로 팔다리를 절단 하는 등의 피해를 입게되고 살아남은 '야마다' 소령은 나중에 권총 자살, 그외 생존자는 2년 후 러일전쟁에서 모두 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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